성숙

성숙해지다. 라는 말은 어떤 말일까?
성숙이란 단어는 국어사전에 다음과 같이 정의된다.

1 생물의 발육이 완전히 이루어짐.
2 몸과 마음이 자라서 어른스럽게 됨.
3 경험이나 습관을 쌓아 익숙해짐.
4 어떤 사회 현상이 새로운 발전 단계로 들어설 수 있도록…

우리 가정은 참 말이 없는 가정이다. 옛날, 가난했던 시절엔(똥구멍이 찢어지도록 가난하진 않았다.) 엄마나 아빠나 밖에 나가서 하루종일 일하기에 바쁘셨다. 때문에 난 주로 이웃집 할머니에게 맡겨져 엎혀 있기 일쑤 였고, 밤 늦게 까지 동생과 단 둘이 있는 경우가 많다. 어렸을 때 부터 불안감이 마음 속 깊이 자리매김 했던 것 같다. 어떤 의지할 만한 존재의 부재. 또한, 부모님의 잦은 다툼 역시 어린 나에겐 큰 충격이었다. 집안이 떠들썩 했다.
나는 어떤 ‘멈추지 않는 것’을 두려워 한다. 멈추지 않고 쏟아지는 수돗물. 꺼지지 않는 가스렌지 불 등. 이러한 것을 못 견디게 두려워 한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어떤 트러블의 하나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어린 나는 참 모난 성격이었다. ‘내 것’에 대한 집착이 많았으며, 남을 이해하고 배려 한다는 생각은 해보지도 못했다. 오로지 ‘나를 위해’ 라는 생각이 우선 적이었다. 때문에, 친한 친구들 사이에서도 적잖은 마찰이 생겼었고, 사춘기 무렵엔 정말 절친한 친구와 멀어지기도 했다. 하지만, 그때엔 그것이 어떠한 것인지 느끼기엔 너무나도 어렸다. 자기 속에 갇혀 있는 사람이었던 것이다.
요즘들어 부모님과 몇 차례 대화를 나누게 된다. 밥상에 앉아서 보면, 우리집은 숫가락 소리 밖에 들리지 않았었다. 간혹, 아빠가 대화를 시도하지만, 공감대 형성이 전혀 되어 있지 않았으므로 꼭 금새 끝을 맺곤 했다. 더군다나, 무뎌진 나는 낯간지러운 상황들에 대해 질색을 하게 되었다. 특히, 나에게 가까운 사람이면 가까운 사람일수록 말이다. 하지만, 그러한 것도 반복되고 서서히 마음을 열어 보니 서로 애타게 사랑하고 있지만 그걸 표현 못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아빠는 다만, 말하고 싶어도 그걸 부드럽게 표현하지 못 할 뿐이었던 것이다.

어렸을 때 부터 아빠에 대한 부담감과 압박감으로 부자관계는 늘 서먹서먹 했다. 무슨 말을 해도 엄마를 바라보고 했으며, 어떤 질문을 해도 엄마에게 하게 되었다. 아빠는 마치 밖에서 돈만 벌어오고 집에서 잠을 잤다가 나가는 사람처럼 되어 버린 것이다.

이 상황이 너무나도 싫었다. 어떻게 해야될까? 내가 낯간지럽게 애교라도 부려야 되는 걸까? 이러한 문제는 비단 나 스스로에게 나온 것이 아니라 가족 모두의 문제였다. 어느 한쪽이 노력한다고 해서 될 문제가 아니었다.

우리집은 하나님을 섬기고 교회를 다니고 있다. 엄마는 오래 전 부터 교회를 다니셨었고, 아빠는 엄마와 결혼하신 뒤에 조금씩 다니시다가 지금은 장로의 직분을 맡고 계시다.

사람의 변화는 너무나도 힘들다. 나는 ‘터닝포인트’ 라는 말을 싫어한다. ‘터닝포인트’라는 것이 없다고 생각하진 않으나, 그것을 섞연찮게 생각하는 것이다. 우리 내면에 “내게 어떤 ‘터닝포인트’ 만 온다면 난 변할거야.” 라는 생각이 자리하고 있진 않나 생각해본다.

변화는 작은 곳으로 부터 시작해서 천천히 오래 오래 느릿 느릿 쌓이게 된다. 변화 한다는 것은 나를 직시한다는 말과 같다. 어떤 막대기 하나가 땅에 오롯이 세워져 있을 때 이것은 ‘변화 하지 않은 상태’가 된다. 하지만, 이 막대기를 옆으로 쳐서 쓰러졌다면 ‘변화한 상태’가 된다. 이 말의 요지는 자신의 ‘원래 가진 위치’ 를 직시하지 않고선 변화할 수 없으며, 변화했다고 해도 그것은 온전한 변화가 아니며, 단지 ‘변심’ 한 것이다.

우리 가족은 이러한 변화에 대해 마음으로 조금씩 느끼고 있다. 그것이 크던 작던 변화가 시작되었으며 진행중인 것을 직시하게 된 것이다. 순식간에 밥상에서 즐거운 대화가 오가는 것은 아니지만, 한 발짝 더 서로 내 딛게 된 것이다. 이 작은 변화는 소중하다.

여담을 하자면, 난 ‘나비 효과’라는 말을 좋아한다. ‘작은 무엇’으로 인해 어마어마한 일들이 벌어진다는 사실이 너무 놀랍다. 우리 우주의 모든 것은 서로 상호 작용을 한다. 태양과 지구가 서로 끌어 당기기도 하고 태양계 자체를 또 다른 무엇이 끌어당기며 작용하기도 하고, 작게는 개미 한마리의 움직임이 다른 무언가에게 작용하기도 하며, 사람과의 관계 속에 어떤 무언가가 작용하기도 한다. 그러니 생각해보자. 무엇하나 하찮은 것이 없는 것이다. 길가에 조약돌 하나라도 그것은 ‘존재함’ 만으로 제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때문에, 난 나의 삶을 사랑한다. 나의 가족을 사랑하며, 나의 이웃을, 나의 친우들을, 나의 선배들을, 나의 스승을, 나의 후배를, 나에게 손을 뻗친 모든 사람을 사랑한다. 더불어, 나에게 뻗친 그 손에 보답하기 위해, 나는 또 다른 누군가에게 손을 뻗고 싶다. 이 것이 나의 삶의 소망이며, 나의 삶의 소명이다.

그렇다고 해서, 아무에게나 사랑을 베풀고 퍼주고 그러는 것은 아니다. 난 천사가 아니라 사람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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