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풍의 언덕] – 에밀리 브론테

모든 것은 ‘워더링 하이츠’라는 히스클리프의 집에서 시작되었다. 워더링(wuthering)은 함축성 있는 형용사인데 폭풍이 불면 정면으로 바람을 받아야 하는 이 집의 혼란한 대기를 표현하는 말이다. 에밀리 브폰테의 <폭풍의 언덕>은 이곳 워더링 하이츠에서 펼쳐지는 사랑과 욕망의 불협화음을 묘하게 들려주고 있다.

이 소설에서 언쇼는 평범한 아버지였다. 적어도 히스클리프라는 정체불명의 주워온 아이를 데려오기 전까지이다. 이 아이가 들어오면서 언쇼는 아들 힌들리에 대한 불만을 노골적으로 드러낸다. 이로 인해 힌들리는 아버지의 지나친 간섭에 상처를 받고, 딸 캐시는 히스클리프를 두려워하면서도 결국 사랑하게 된다. 그러나 힌들리의 신경질적인 반대에 부딪쳐 드러시크로스가(家)의 에드거와 마음에도 없는 결혼을 하게 된다. 이뿐만이 아니라 이 집안의 딸 이사벨라는 히스클리프의 부인이 된다.

그렇다고 해서 폭풍이 잦아든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그들의 복잡한 운명은 여러 조각으로 나누어지며 흩어져다가 다시 합쳐졌다. 히스클리프가 끝내 이 두 집을 모두 야멸치게 차지하게 된다. 즉 처음에는 낯선 손님이었다가 끝내는 주인이 된 것이다. 도대체 그에게 어떤 마력이 있는 것일까? 그 속내가 무척이나 궁금했다. 그는 현실적 욕망을 거침없이 드러낸다. 이것이 상대방을 두렵게 하면서도 정작 거부하지 못하게 한다. 더구나 상대방들은 육체적으로 허약하다. 엄밀히 말하자면 그들은 낯선 사랑에 비틀거렸다.

‘우리는 히스클리프의 ‘불행한 행복’을 보면서 사랑의 맹점을 알게 된다. 단순히 삶의 문제만은 아닌 듯했다. 물론 어떻게 사는가에 따라 사랑의 욕망은 달라지는 법이다. 히스클리프는 전략적인 사랑을 갈망했다. 반면에 그를 둘러싼 사람들은 본질적인 욕망에 사로잡혀 있었다. 서로 다른 두 가지 사랑이 엇갈리면서 작가가 말하고 있듯 행복이 끝장나게 된다.


왜 그럴까? 이유인즉 “우리 모두가 결국에는 자기 본위로 살기 때문이다. 즉, 순하고 너그러운 사람이라 해도 그는 거만한 사람보다 정당하게 이기적인, 그 차이일 뿐이다. 그리하여 여러 가지 사정으로 상대가 자기에 대한 이해를 자기 위주로 생각해주지 않는다고 되었을 때 행복은 끝장나는 것이다”라고.

출처 : <네이버 ‘오늘의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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