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포영화

어렸을 적에 참 겁이 많았다. 지금도 문득문득 겁이 솟아올라 불을 켜고 잔다거나 화장실에 들어갔다가 문을 슬쩍 열고 볼일을 보곤 한다. 서른 중반에도 이럴 정도이니 객관적으로도 겁이 많은 게 아닐까?

어린 나이에는 인형을 좋아했다. 푹신푹신하고 귀여운 외형이 맘에 들었다. 그걸 안고 자면 안정감도 들었기 때문인 것 같다. 그런데 ‘사탄의 인형’이라는 영화 이후로 인형을 더 이상 좋아할 수 없게 됐다. 어이없는 건 그 영화를 실제 제대로 본 적도 없으면서 막연하게 인형을 무서워 하기 시작한 거다. 그 뒤로는 안정감을 주던 인형이 어느 순간 귀신에 씌어지지 않을까 걱정했다.

고등학생 무렵이었나? ‘가위’라는 한국 공포영화를 봤다. 왜 봤는지는 기억이 안 난다. 아마도 그때 가장 무서웠던 것은 이불 밑에서 갑자기 귀신이 나왔던 장면인 것 같다. 그 걸 본 뒤로는 한 동안 맘 편히 이불을 펼쳐서 잠을 못 잤다.

이처럼 공포영화를 꽤나 무서워하다 보니 자연스레 영화관에서도 공포 영화는 되도록 보지 않는다. 그러던 중 ‘오싹한 연애’라는 영화를 봤다. 겉으로는 그렇게 공포스러워 보이지 않아, ‘이 정도야 뭐~’라며 관람했다.

초반엔 주인공들의 달달한 이야기에 웃음 지으며 보다가 중간중간 무섭게 튀어나오는 귀신에 몇 번을 놀랐는지 모르겠다. 손예진의 사랑스러운 연기에 몰입하다가 갑자기 튀어나오는 귀신 모습에 재밌게 보던 기분을 확 망가뜨리는 느낌이었다. 이게 한 번 그런 것이 아니라 영화 내내 꽤나 반복되었다. 

마치 연인과의 연애 과정에서 그렇게 좋다가도 서로 남남인 것처럼 싸우게 되는 그런 긴장감을 ‘공포’라는 감정으로 치환하여 표현한 느낌이다. 연애를 하게 되면 상대방의 그림자 또한 마주해야 하는 그런 ‘두려움’을 공포로 표현한 것일까?

이렇게 갑작스레 놀라게 하는 장면이 자주 있다 보니 영화 막바지에 이를 무렵, ‘괜찮은 영화이긴 한데 참 불쾌하다.’라는 생각을 했다. 겁이 많다 보니 깜짝깜짝 놀래는 것이 무척 싫었다. 그런 생각을 갖던 중 남주인공의 마지막 대사가 마음 깊숙이 와 닿았다. 오래전에 봤던 영화라 내 기억은 상당히 파편화되어 미화된 것만 남았는데 영상을 찾아보니 그때의 가슴 아팠던 생각이 불현듯 떠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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