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에 안주하는 삶과 이상의 삶

전도사님이 얼마전에 이야기 했던게 생각난다. 유대인을 학살 했던 그 시기에 유대인을 수용소에 가둬두었었는데, 그 수용소에선 가스실에 끌려 가는 사람들을 볼 수 있었다고 한다. 한 사람은 그 장면을 유심히 관찰하였었다. 가스실로 끌려가는 사람들을 보는 수용소 안의 사람들은 절망으로 가득찼다. 가스실로 끌려가는 사람들의 절망이 수용소 안에 있는 사람에게까지 전달 된 것이다. 수용소에 있는 사람들 역시 곧 그들과 같이 가스실로 끌려 갈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가스실로 끌려가는 사람들을 본 사람과 수용소 창밖 너머 푸른 세상을 바라본 한사람은 그 결과가 달랐다고 한다. 가스실로 끌려가는 걸 본 사람들은 매사에 절망적이며 부정적이었지만 철창밖 너머를 본 사람은 절망하지 않았던 것이다. 밖으로 나가는 꿈을 꾸었으며 그 밖에서 살아가는 자신을 그려간 것이다.

대략 이러한 내용이었는데 정확한 이름은 기억이 안난다.

현재의 나를 돌아본다. 나는 주변 환경을 탓하는 경우가 많았다. 만약 내 주변의 상황이 이랬다면, 이랬다면, 하고 곱씹어 생각할 뿐 딱히 주변 상황을 바꾸려고도 하지 않고 그저 원망만 할 뿐이었다. 어느 글에서도 보았지만 결국, 주변환경이라는 것은 나에게 영향을 미칠 순 있어도 나를 지배하진 못한다. 그냥 그뿐인 것이다.

어젠가 재훈이형과 등록금 관련 뉴스를 보며 욕을 해댔다. 등록금이 없어 자살하는 사건들 돈이 없어 뭐한 사람들… 너무도 슬픈 사건들이 일어나는 세상에 대해 욕지거리를 한 것이다. 그러고 나서 재훈이형이 자신의 친구 아버지 이야기를 해줬다.

친구가 이사를 가던 날이엇다. 재훈은 친구를 도와 이삿짐을 나를려고 갔었다. 하루종일 이삿짐을 옮기고 쌀쌀했던 날이라 벽난로에 불을 붙였다. 그리곤 따뜻해질 동안 밖에서 저녁을 먹고 들어오자고 하고 집을 나섰다. 재훈은 저녁을 먹고선 집으로 돌아와 쉬고 있는데 그때 전화벨이 울렸다. 이사한 친구의 울먹이는 목소리, “집에 불이 났어..”
친구의 가정은 연이은 사업실패로 매우 어려웠다고 한다. 그나마 좀 살것같다 싶어서 새로 집을 장만했던 거였는데 이사한 그날 벽난로에서 불이 난 것이다.

재훈이형은 이 얘길 하면서 그 친구 아버지가 자살하시는건 아닌가 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누가 생각해도 절망적이지 않은가. 듣다가 내가 물어봤다. “지금은 어떠셔?”
여전히 힘든 상황이라고 하신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분은 살고 계신다.

세상 참 더럽고 불공평하다고 생각될 때가 많다. 물론, 24살에 온실 속에서 자란 녀석 마냥 좋은 곳에서 자란 나는 그런 생각이 절박하게 들때가 있진 않았지만, 사람들 살아가는 것을 전해 듣고 보다보면 그런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왜 이렇게만 살아야 할까?’ 라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그럼에도 사람은 살아간다. 어째서 일까. 이 각박하고 힘든 세상 무엇에 기대어..
짧은 생각이지만, 판도라의 이야기와 같지 않을까. 희망을 바라보는 사람에겐 지금을 살지만 내일을 기대하는 마음이 있으니까 말이다.

한때 현시창(현실은 시궁창) 이라는 말이 자주 쓰였었다. 그저 지금 내가 있는 곳은 시궁창이라는 그런 의민데, 그런 시궁창에서도 무덤덤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은 하늘을 볼 줄 아는 여유가 있기 때문이 아닐까. 내 비록 발을 담그고 있는 곳이 시궁창일지언정 허리 뻗고 하늘을 바라볼 넉넉함이 있는 것이다.

각박한 세상이다. 나 살기 바쁜 세상이다. 밥그릇에 하루 한끼 채우기 힘든 세상이다. 하지만, 몰인정은 몰인정을 낳는다. 가는게 있으면 오는게 있다는 말은 좋은 것만 뜻하는게 아니다. 이럴때 일수록 서로를 돌아볼 여유를 갖어야 할 때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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