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24 : 선택과 갈등

선택은 살아가는데 있어서 끊임 없이 마주하게 되는 갈림길이다. 어떠한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결과가 달라질 수 있기 때문에 사람들은 선택에 앞서 항상 고민한다. 인류의 최대 고민은 “오늘 점심 뭐 먹지?” 가 아닐런지. 매일 같이 먹는 점심 식사인데도 고민을 하게 된다. 무얼 먹을까?

선택에 어려움이 따르는 이유는 기회비용 때문이다. 어떤 것을 선택했을 때 다른 것을 선택할 수 있는 기회를 버리는 것이기 때문에 고민하게 된다. “아이패드 16기가를 사면 분명 영화나 드라마 몇편 넣으면 끝일거야. 그럼 32기가를 사는게 낫지 않나? 음.. 그렇게 한단계 올릴바에야 아에 64기가를 사서 오래 쓰는게 낫지 않나.”
요즘 들어 제일 많은 고민을 하게 만드는 것은 아마 전자제품일 것이다. 이 빌어머글 전자제품은 소비자의 다양성을 위한다는 명목으로 어마어마하게 많은 옵션들을 추가해놨는데 이런 옵션들이 때론 좋을 때도 있지만 앞서와 같은 고민을 토해내게 한다.

필자도 아이패드2를 구매하는데만도 인생에 두번다시 없을 대단한 결정이라도 하는냥 고민을 했었다. “화이트냐 블랙이냐.”, “32기가냐 64기가냐”, “3G냐 wi-fi냐”.
윽.. 저것들만 나열했는데도 다시 또 머리가 지끈 거린다. 지금이야 그냥 내가 쓰는게 좋은거임. 하고 쓰고 있지만 그때 당시만해도 화이트로 결제했다가. 주변에서 당연히 블랙사야되는거 아니냐는 소리에 결제 취소까지 하고 다시 구매를 했었다.

이번에 어학연수를 준비하면서도 많은 선택을 해야했다. 먼저, 어학연수를 갈 것이냐 유학을 갈 것이냐. 처음 목적을 ‘영어 배우기’ 라고 두었을 때 주변에서 반대의 목소리가 많았다. “어학연수로 무슨 영어를 배우냐”. “필리핀에서 영어 배워봤자 이상한 발음만 늘어서 온다.”, “필리핀 갔던 남자들 대부분 필리핀 여자랑 섹스하는데 정신 팔려서 영어는 커녕. 돈이랑 시간만 버리고 온다.” 등 다양한 이야기들을 접했다. 또한, 최근 이러한 문제로 뉴스나 기타 언론매체에서도 어학연수에 대한 비판적인 소리들이 들려왔다. 이런 비판적 목소리에 신뢰를 얹어준 것은 많은 블로그의 홍보물들이었다. 아이러니하게도 블로그에서 어학연수에 대한 경험기를 위장한 홍보물들을 보며 진짜 더 안 좋을 수도 있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정말 좋고 많은 사람들이 원한다면 그런 홍보글들이 많을 이유가 없다. 오히려 함께 나누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진정성 있는 글들이 대부분이겠지. 

이러한 부정적 상황에서도 ‘나는 아닐거야’ 라는 막연한 자만감으로 지금껏 준비하고 있다. 아니 나를 몰아가려고 한다. 
어떠한 상황이든 단적으로 나쁘고 단적으로 좋은 상황만 존재할 수는 없다. 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나마 없어져 가는 어학연수에 대한 희망을 유지하며 하루하루 준비하고 있다.

이렇듯 ‘어학연수를 가겠다.’ 라는 선택에만도 많은 시간이 걸렸는데 두번째 또 커다란 장벽이 있었으니 어학연수 지역을 선택하는 것이다. 지역을 선택했더니 이번엔 어학원. 하나하나 결정하는데도 시간이 오래 걸릴뿐더러 준비하면 준비할수록 비관적 상황들이 범람하는 것을 느꼈다. 

아. 이 빌어먹을 어학연수가 나 하나 얼마나 해쳐먹을라고 이렇게 힘들게 하나 하는 생각까지 들다가 이내 모든 것에 해탈해 버렸다. 가장 큰 문제가 어학원 등록비에 관한 문제 였는데 많이 해쳐먹거나 덜 해쳐먹거나 내 등록비 먹을라면 먹어라 대신 영어 하나는 어떻게든 죽어라 배워 갈 생각이다. 라고 결정했다.

그나마 필리핀 어학연수에 대해 결정하는 시간이 줄어든 것은 궁극적인 목적은 호주 워킹홀리데이를 하기 위함이다. 아. 글을 쓰면서도 필리핀 어학연수 비용을 생각하면 가슴이 쓰리다. 그 돈이면 한국에서 1년은 고급 영어학원을 다닐 수 있는 비용일텐데. 쿨럭. 심장 쪼여드는 느낌이 드는구나.

후. 그래도 호주워킹홀리데이에서 무언가 얻는게 있을거야! 라는 생각으로 호주에서도 어학원을 다닐 생각을 하였다. 앞서 필리핀에서와 같은 상황이 반복되었다. 멘탈붕괴는 시작되었고 회의와 후회 속에 어학연수에 대해 다시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그러던 와중 만나게 된 책이 “어학연수 때려치우고 세계를 품다” 라는 책이다. 저자 역시 나와 마찬가지로 처음엔 영어를 배울 요량으로 어학연수를 준비하게 되었다. 여러 상황을 보았을 때 다른 점도 있었지만 중요한 것은 어학연수의 목적이 단지 영어를 배우기 위함이라면 그에 대한 효율은 극단적으로 떨어진다는 것이다.

내가 주변 지인들을 보았을 때 토익을 기준으로 영어 공부를 시작하였을 때 비약적으로 점수가 향상될 수 있는 처음 토익 점수는 500점대 인 것 같다. 처음 토익 시험을 볼 때 뭐 신발 사이즈가 나온다. 이런 얘기도 하는데 그래도 기본은 갖추고 있는 사람은 500점대 점수에 쉽게 입문 하는 것 같다. 이런 사람들은 어학연수를 했을 때도 기본 어휘력과 문법이 있는 상태기 떄문에 단기 어학연수로도 큰 효과를 볼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나처럼 토익 초기 입문 점수는 300점대이고 학원 다니고 좀 신경썼다고 해도 400점이 나오는 기염을 토하는 사람은 영어를 단기간 배웠을 때 큰 효과를 보기 힘들다.

그렇다면, 나는 어학연수를 가도 영어를 비약적으로 발전 시킬 수 없으며 전형적인 “어학연수 실패 사례” 중 하나에 들어갈 것이 뻔하다. (아. 글을 쓰고 있는 와중에도 기분 나빠질려고 하네.)
그럼, 실패할 것이 뻔히 보이는 어학연수를 어떻게 하면 나에게 의미 있게 만들 수 있을까? 일단, 필리핀 어학연수는 어찌됐든 나에게 도움이 될 거라 생각된다. 토익 점수 올릴 목적이라면 하등 도움이 안되겠지만 기초회화력도 부족하고 기본 문법도 잘 모르는 나에게 ‘기초를 닦는다’ 라는 목적은 충분히 만족시켜줄거라 생각한다. 하지만, 호주 워킹홀리데이의 경우 금전적 문제와 효율적 측면에서 따져볼 때 호주에서 어학연수를 하는 것은 회의적이다. 생활하는데 드는 비용. 어학원 비용. 등 필리핀에 비해 더 많은 비용이 투자되어야 하며, 내 영어 실력으로는 기초 이외의 실력을 닦는데 3개월이라는 단기간은 너무 짧다. 3개월 해서 갑자기 영어가 솰라솰라 유창해 진다면, 아마도 어학연수 실패에 대한 인터넷 글들은 애초에 나오지도 않았을 것이다. 

허면, 불보듯 뻔한 어학연수 대신에 내가 얻을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한가지 초점을 둔 것은 사람이다. 처음 어학연수를 계획한 것은 물론 영어를 배우겠다라는 생각이 있었지만 이것은 표면적 목적이었다. 뭔가 배움으로써 내 해외 여정에 대한 타당성을 만들려던 것이었다. 물론, 이 때문에 반대를 많이 받았지만 서도 목적은 그랬다. 
표면적 목적 외에 다른 것은 삶에 대한 고민을 풀고 싶어서이다. 지랄 쌈싸먹네. 라는 소리를 들을 수도 있겠다. 어느덧 내 나이 27살이 되었다. 남들은 다들 취업하거나 아니면 대학 등록금 마련하기도 힘들어 하며, 어학연수나 여행에 대해 사치스럽게 생각한다. 나 역시도 갈등되었던 부분이 ‘사치’ 에 대한 것이었다. 자신있게 내가 모은 돈으로 떠났다 올꺼야. 라고 하면 “OK!” 이다. 하지만, 해외로 나가는데 드는 비용이 워낙 크기 때문에 당당히 내가 모은 돈으로 떠나! 라고 말할 수 없었다. 부모님께 어느정도 돈을 받아야 했다. 좀 더 돈을 모아서 떠날 수도 있었지만 그렇게 되면 나는 또 어딘가에 안전한 장소에 틀어박혀 그곳을 떠나지 못할 거라 생각했다. 여튼, 돈을 받게된다는 부담감에 ‘사치’라는 생각이 들게 되었고 학생일 때는 몰랐던 나이에 대한 부담감 또한 밀려왔다. 22살에 유럽여행을 떠날 때만 해도 모든 선택이 가뿐했다. 젊은데 뭐. 이정도야. 또한, 그땐 1년 정도 휴학하고 아르바이트 한 돈으로 다녀온 거기 때문에 ‘사치’라는 생각도 없었다. 내 돈 내가 쓰겠다는데 뭐. 누가 뭐라 함? 
5년이 지나고 여러 상황이 달라졌다. ‘사치’ 아닌가. ‘도피’ 아닌가. 남들은 다들 취직자리 구하고 자기 일 하는데 ‘취직’ 할려니 무서워져 도피하는게 아닐까. 1년이 넘는 긴 시간을 다녀오면 난 한국에서 취직도 못하고 ‘한국 백수 인구비율’을 높이는 한 사람이 되는건 아닐까 라는 생각들이 들었다. 
그럼에도, 호주로의 여정길을 포기 못하는 것은 다른 삶에 대한 간절함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관찰자가 되어 다른 사람들이 사는 것을 보고 싶었다. 사람 마다 저마다의 이야기를 갖고 사는데 어떤 이야기들이 있을까. 현재 우리 나라의 환경적 요인으로 인한 팍팍함이 아니라 좀 더 다양한 모습들을 느끼고 싶었다.

호주 워킹홀리데이에 대해 어학연수라는 부담을 넣으니 뭔가 반드시 얻어와야 한다는 부담감이 쌓여버렸다. 하지만, 생각을 좀 바꿔 여행도 하고 사람 사는 틈에 껴서 놀아도 보고 일도 해보고 라는 생각으로 바꾸니 부담이 아니라 설레임이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더불어, 또 한번 자전거 여행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호주 여행을 자전거 여행으로 하면 재밌겠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 

여행은 항상 불완전한 기적을 보여준다. 불완전하기 때문에 예측 할 수 없으며, 그렇기 때문에 더욱 새롭게 느껴 질 수 있을 것이다. 여행은 반드시 내게 무언가 줄 것이다. 아무것도 없으면 어떡하지? 라는 두려움이 아니라. 푹 빠져서 느껴보자. 힘든 결정이기 때문에 더 가치 있을 것이다. 

결국에 선택에서 중요한 것은 자기 자신이 느끼는 감정이다. 투자 대비 가치가 어느정도인가를 매길 때 금전적으로 결과가 나오는 것도 있지만 금전적 가치로 매길 수 없는 것이 더욱 소중하고 중요할 때가 있다. 즉, 사과를 100원 주고 사서 불만족 스러울 수도 있고 50원 주고 사서 만족스러울 수도 있다. 

지금 내가 하는 선택을 존중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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