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은정 검사

정치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너무 많은 것을 알게되었다. 때로는 불편하기도 하며, 때로는 좋은 영향을 갖는 것도 같다. 하지만, 그것이 옳은 것인지는 역사로 기록하여 회고할 따름이다. 

오늘 포털사이트 및 각종 커뮤니티에 ‘박은정 검사’ 가 핫 키워드로 올랐다. 무슨 일인가 하여 검색해 보니, 지난 번 2011년 서울시장 보궐 선거인 10.26 선거 때의 논란이 현재까지 이어지는 것이었다. 당시 10.26 선거는 무엇인가 불쾌한 면이 많았다. 선거관리위원회 홈페이지가 가장 많은 사람들이 투표하는 시간인 오전에 일시적 다운되었으며 후보 중 한명인 ‘박원순'(현 서울시장)씨의 홈페이지 또한 다운 되었던 것이다.
한동안 홈페이지 다운에 대해 조용히 넘어가는가 싶었지만 여기저기 논란의 목소리들이 인터넷에 올라왔다. 갑자기 투표장소가 변경되어 혼란을 겪었던 사람들과 투표장의 위치가 터무니 없는 곳에서 이뤄지는 곳들이 있었던 것이다. 일련의 사건들이 계연성을 지니면서 의혹이 증폭하기 시작했다.

이때, 의혹을 폭발시킨 것은 팟캐스트의 ‘나는 꼼수다’ 라는 녹음 라디오였다. 나꼼수 측은 여러가지 정황을 분석하여 선거관리위원회 측의 부정적인 요소들을 집어냈다. 더불어, 투표 이전에 후보 나경원씨의 여러 네거티브 전략에 진저리를 치며 경고 차원에서 나경원씨의 비리를 파해쳤는데 이것이 큰 이슈가 되어 나경원씨의 당락을 결정 짓는 요인이 되었다. 그 과정 중 나꼼수 팀의 주진우 기자가 전면에 서서 나경원씨의 비리를 파해쳐냈는데 이에 대해 나경원씨의 남편 김재호 판사는 부천지검의 박은정 검사에게 네티즌 유포자(주진우)를 조속히 기소해달라고 청탁하였다. 

– 정정합니다. : 주진우 기자가 나꼼수에서 기소청탁건을 폭로하였고, 나경원 측은 이에 대해 허위사실 유포라고 하였었습니다. 

이를 부당히 여긴 ‘박은정 검사’는 오늘(2012년 2월 29일) 양심선언 하여 김재호 판사의 청탁건을 밝혔다. 다음은 관련기사 캡쳐이다. 링크

 
그녀는 양심선언의 이유를 “내가 저항하고 싶은 이유는 사람이고 싶어서” 라고 밝혔다.

인터넷을 보다 보면, 공중파 방송에서 감추어진 많은 사실들을 눈으로 보게된다. 그중엔 ‘그랬다 카더라’ 라는 뜬 소문도 있으며 ‘정말 이게 사실이야?!’ 라며 깜놀하여 뒤로 자빠지게 하는 내용들도 있었다. 때문에 어떠한 사실에 대한 이슈가 뜨게 되면 여러 글을 심도 있게 찾아 보게된다. 

그렇지만, 이번 정권에 들어서는 정말 심했다고 할 정도로 한쪽으로 편향된 정보들이 인터넷에 올라온다. (댓글 알바는 논외로 치자.) 그 이유가 무엇일까? 공중파 방송과 주요 언론매체의 극에 달한 치우친 성향이 국민들로 하여금 반발심을 일으키게 한 것일까? 이례적으로 ‘나꼼수’ 와 같은 매체가 급부상하는 현실이 되었다. 
한편으론 너무 심하게 치우쳐 대중심리에 의해 사람들이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그래도 한 나라의 대통령인데 말이다. 하지만, 다양한 정보들을 보게 되면서 ‘이건 아닌데.’ 라는 생각이 들었다. 가카께서는 많은 일에 꼼꼼함을 보이셨다. 그 꼼꼼함은 어찌나 ‘이윤’ 에 집착되어 있는지. “저 사건이 왜 일어날까?” 를 고민하기 보다. “저거 해서 남느게 뭘까?” 라고 생각하는게 그 사건의 본질을 파악하는데 오히려 효과적이었다. 

이런 나 조차도 현 사태에 대해 갈등한다. 무조건적인 편향성은 ‘우’를 낳는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이 한쪽으로 치우칠 때 경고음을 내게 되는 것인데. 이번 경우는 절대적이다. 그 절대적인 상황을 가카께서 몰아가신다. 이렇게 꼼꼼하실 수가 있을까. 

하지만, 안타까운 것은 아직도 모르는 사람들은 나와 같은 갈등을 한다는 것이다. ‘에이. 설마.’ 라면서 말이다. 저돌적으로 또는 돌격적으로 행동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 모든 상황이 너무도 이성적으로 연결되어 있어서 오히려 화가난다. 어떻게 까지 저럴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이 드는 거다. 이 빌어먹을 상황에선 희망조차 없는걸까. 라는 생각. 

하지만, 그 와중에도 박은정 검사와 같은 사람은 있다. 이 사람은 자기 자신에게 떳떳하기 위해 양심선언을 했다. 그 결과는 참혹할 수도 있겠다. 검사 밥그릇 어디가도 알아주는 밥그릇 일텐데 그것을 포기하는 행동을 한거나 마찬가지다. 기득권에 있는 사람들 누가 그녀를 신뢰하겠는가. 아마도 어디 변방에 떨어지거나 검사 생활도 못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자신에게 떳떳해 지기 위한 대가는 너무도 크다. 

우리 나라엔 아직도 이런 상황이 너무도 많다. 부양할 가족,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선 때론 눈감아야 하는 것이다. 새로운 형태로 우리 자신에게 신사참배를 단행시킨다. 그 와중에 스스로 떳떳하자고 사랑하는 이를 외면하는 이는 별로 없을 것이다. 대부분, 그래 나 하나 쓰레기 되면 내 가족들은 살 수 있을거야. 라는 생각으로 스스로의 자존감. 양심 따위 불구덩이로 던지고 자기 자신 마저도 투신 하는 거다.

때문에 ‘불의’는 당당하다.  

그럼에도, 
 “내가 저항하고 싶은 이유는 사람이고 싶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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