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터널 선샤인


 

 

 

 

 

어느날, 인터넷 뉴스의 눈에 띄는 문구가 ‘클릭질’을 유도 했다.

 

 

 

 

‘과학자들, ‘나쁜 기억’만 골라 지우기 성공했다’

 

 

 

 

 

 

“이야~ 이게 무슨 소리냐~? 정말 이런게 가능해?” 라며,

기사 원문을 꼼꼼히 읽어 내려갔다.

 




 

이 기사를 보자마자, ‘과연 그게 정답, 아니 옳은 일일까? 잘된 일일까?’ 라는 의문을 품게 됐다. 문득, 내가 입은 사랑에 대한 아픈 기억을 잃는다면, 마음이 편할까? 라는 생각을 하게됐다.

 

“정말 그렇게 될까?”


늘 답은 먼 곳에 있는 듯 했다.

 기사의 댓글들을 천천히 읽고 있는데


“이야~ 완전 ‘이터널 선샤인’이네~”


라는 댓글이 눈에 띄었다. ‘이게 뭐지?’ 당장, 검색사이트에 ‘이터널 선샤인’을 쳐봤다. 첫화면에 바로 영화 정보에 ‘이터널 선샤인’ 이라는 영화가 나왔다.


‘혹시, 이 영화가 내게 어떤 답을 알려주지 않을까?’


꼭 한번 봐야지..




 

 지루한 듯 늘 있었던 듯. 하지만, 그게 우리의 일상인 듯 나긋 나긋한 음악이 흐르고 조엘(짐캐리)이 잠에서 깬다. 아침 잠이 부족하여 짜증을 부리는 그의 모습이 내 모습과 겹쳐져 웃음이 나온다.

 

 




바글바글한 전철, 우리네 사는 것과 다르지 않은 일상. 매일 매일 시작되는 똑같은 하루.

 

 


 조엘은 갑자기 뛰기 시작했다. 반대편의 ‘몬토크’ 행 전철로. 왜 그랬을까?

그는 독백한다.

 

“이유는 모른다. 난 충동적인 사람도 아닌데”

 

 

 

 

나도 조엘처럼 어디론가 뛰쳐나가고 싶을 때가 있다.

  난 아침 7시20분에 일어나 씻고 옷을 입고 부랴부랴 지하철로 향한다. 지하철에 들어가 보면, 아무 말 없이 굳어있는 사람들의 얼굴과 ‘슥- 슥-‘ 신문넘기는 소리만 들린다. 아이들이라도 없는 시간대면, 말 소리 하나 들리지 않는 지하철이 내겐 너무 상막했다. 매일이 그렇게 지겹게만 흘러가는 듯 했다. 나도 때론 ‘일탈’ 이 필요한 나이가 되어 버렸나 보다.

하지만, 역시

  ‘그것도 삶이야..’ 라며 누군가를, 나를.. 위로한다.

 

 

 



해변을 걷는 조엘, 자신이 왜 이 자리에 왔는지 이유도 모른체 해변을 거닐며 그는 무슨 생각을 할까? 무엇을 위해 그 자리에 왔는지도 모른체 마냥 길을 걷는다.

 

 

 

 

 

 



우리들의 만남이란 도대체 어디서 부터 시작되는 걸까?

 

 

 

 

 



난 만남에 대해 늘 어렵게만 생각하고 있었던 것 같다. ‘운명’이라느니 ‘천생연분’ 이라느니 ‘나의 단 하나 뿐인 영혼의 반쪽’ 이라느니..

‘대단한 무언가의 시작’으로 그런 관계들이 나타날 것이라고 막연하게 생각만 했다. 그래서 오히려, 스쳐지나가는 만남의 소중함을 몰랐던 것일까?

 

나의 이런 만남에 대한 어려운 생각과 다르게, 조엘과 클레멘타인(케이트윈슬렛)의 만남은 조엘의 몇번의 눈 흘김과(쑥쓰러워 하며 계속 클레멘타인의 눈길을 피하는 조엘이 왠지 귀엽구나~) 클레멘타인의 “Hi” 라는 유창한 인사로 시작된다.

 

대화를 하며 어색한 농담을 했다가 민망해서 고개를 돌리고 다시 그 대화를 이어가려 부던히 애쓰는 그들의 노력에 피식 웃음이 난다.

10살 먹은 어린아이 둘이, 좋아서 어쩔줄 모르는 그런 장면이 문득 생각나서 일까? ^^

 

 

 

 

 

 



사랑을 하는 순간!

  모든 평범한 일상은 특별한 것으로 바뀌게 된다. 어제는 지겹고 짜증스럽게만 보이던 자명종 시계가 오늘은 왜이리 느리게만 가는고~ 하고, 디룩디룩 살 쪄서 걸어다니는 비둘기 녀석들이 오늘은 나만의 평화를 위해 존재하는 듯 하다.  ‘두근두근~ 두근세근~’ 뛰는 심장을 어르고 달래도 이놈의 녀석은 좀체 부끄러운줄 모르고 펄떡펄떡 뛴다.

‘멈춰 이자식아~~~~’

 

 

  사랑은 누구에게나 그런 것 같다. 좋아서 어쩔줄 모르겠는 그 느낌! 만나기 1시간 2시간 전부터 심장이 콩딱콩딱~ 그 사람의 얼굴을 본 순간 심장은 멎어 버릴 듯 하고 지금 이 순간이 영원처럼 이어져야 숨 쉴 수 있을 것만 같은‥
 

  불현듯 찾아 오는 사랑에 우리는 당혹 스럽기도 하지만, 그 거역할 수 없는 놀라움에 이내 힘을 잃고 사랑에 빠져 버린다. 블랙홀이 이보다 더한 흡입력이 있을까?

 

조엘과 클레멘타인 역시 서로를 끌어당기는 그 힘에 저항할 생각은 애초에 할 생각도 없었는지^^; 서로에게 깊게 빠져든다.



만나고 깊어지는 관계 속에, ‘인생’ 이라는 제목의 우리네 일기장은 같은 이야기들로 쓰여진다. 그것이 추억이 되고 애뜻함이 되는 것일까?


 

 그렇게 행복하게만 이어져갈 줄 알았던 영화에 이변이 생긴다.




 


뜻 모를 질문을 던지는 ‘그’ 앞에 조엘은 당황스럽기만 하다. 난데 없이


“어떻게 도와드릴까요?” 라니? 조엘은 단지, 차 안에 앉아 있었을 뿐인데 이게 무슨 소리란 말인가. 이때부터 ‘뭔가 잘못 되었다.’ 라는 생각이 들고,


이내 영화는 새로운 시작을 맞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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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울며 나타난 조엘. 조엘의 모습에 난 깜짝 놀랐다.


“으잉? 알콩달콩 잘 있던 것들이 왜 그래?”


‘헤어졌나? 뭐지? 어떻게 된거지?’ 라는 무수한 질문만 남기며 영화는 계속 이어져갔다.


그저 알콩달콩 사랑이야기에 푹 빠져


“제길 부러운 녀석들” 솔로의 한으로 칼을 져미고(?) 있었는데 이 무슨 일이란 말인가~

이터널 선샤인


(:Eternal Sunshine Of The Spotless Mind)


“순결한 마음의 변하지 않는 햇빛처럼”

마치, 지금 영화가 시작되었다는 듯 제목이 흘러 나오며 출연진이 나온다. 순간, 영화를 잘못 봤는지 착각을 할 뻔했다.


“-_-… 어둠의 경로를 통해 받았더니 잘못되었나?”


여튼, 조엘의 당혹스러운 표정은 나름 심각해 보였다.




  조엘은 어느 주택가로 들어가 자연스럽게 우편물을 확인한다.


뭘까? 분명히 아깐 클레멘타인이랑 같이 집으로 오기로 되어 있었는데..


근데 희안한 것은 이웃집 친구로 보이는 사람이 자연스럽게 클레멘타인에 대해 이야기 하는 것이다. 마치, 언제나 조엘 곁엔 클레멘타인이 있었던 것 처럼..

이웃 동료가 넌지시 말한다.


“발렌타인 데이가 겨우 하루가 남았는걸~”

분명, 아까 클레멘타인을 만났던 날이 발렌타인 데이였다.


영화 전반부의 조엘의 독백에서의 그 말


“오늘은 축하카드 회사가 만들어 낸 축제일…”


이라며, 발렌타인 데이임을 알렸었다. 그렇다면, 시간이 뒤 바뀐걸까?



 


조엘이 어떤 약을 먹고 쓰러지며 기다렸다는 듯, 괴한들이 조엘의 집을 침입한다. 다양한 기기들을 가지고 들어간 그들과 뒤죽박죽 기억이 섞이는 조엘, 도대체 이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걸까?


단순한 사랑 이야기 인줄로만 알았던 영화가 베일에 쌓여있는 것 마냥 아무 것도 알 수 없게 되었다.

시간은 다시 발렌타인 데이 4일 전으로 이동된다.


난-_- 점점 머리는 복잡해져가고 무슨 추리소설인 마냥 열심히 굴려며 어떻게 된 걸까 고민하기 시작했다.

영화는 다시 발렌타인 데이 4일 전으로 돌아간다. 조엘이 발렌타인 데이 선물을 준비해 클레멘타인을 찾아 갔었다. 하지만, 그곳에서 조엘은 뜻밖의 상황을 보게 된다. 바로 클레멘타인이 다른 남자와 만나고 있고, 자신을 모른다는 듯이 쳐다보는 것이다.


어떻게 된거지? 클레멘타인이 양다리를 걸치고 시치미를 떼는 것이란 말인가? 두둥


  조엘은 굳은 듯 아무 말도 못했고, 그 자리를 떠 날 수 밖에 없었다.


그러곤 마치, 기억의 공간이 뒤 섞이듯 장소가 바뀌었다.



조엘의 친구인 듯한 두 남녀가 조엘의 하소연을 듯다가 정 안되겠다는 듯이 남자가 희안한 봉투를 하나 꺼내어 조엘에게 건내주었다.

그 봉투 안의 종이엔 이렇게 적혀있었다.

“이킨 부처에게 – 클레멘타인 크루친스키는 조엘 배리쉬에 관한 기억을 제거했습니다. 그녀에게 둘의 관계를 언급하지 마십시오. 라큐나 주식회사”

이 문구를 본 순간 무언가 그럴듯 하게 흘러가기 시작했다.


그렇다. 클레멘타인은 조엘에 대한 기억을 지운 것이다. 정리하자면, 조엘과 클레멘타인은 원래 알던 사이였던 것 같다. 근데 클레멘타인이 기억을 지우고 다른 남자와 같이 있던 것이다.


그 사실을 안 조엘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믿어왔던 사랑에 배신을 당했다. 그것도 어이없을 정도로 황당하게 말이다. 물론, 둘 사이에 다툼은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기억을 지워버리다니?



 


라쿠나 주식회사에 직접 찾아간 그곳에서 조엘은 같은 문구가 적힌 종이들을 발견하게 된다. 모든 사건의 중심이 되던 곳에 드디어 도착하게 된 것이다.

담당 의사와 만난 조엘은 그에게 뜻밖의 소릴 듣게 된다.


“크루친스키 양은 행복하지 않았고 그래서 이사를 가려했죠.”

장난처럼 자신과의 추억을 지운 클레멘타인에게 조엘은 분노하고야 만다. 어느 누가 분노하지 않을 수 있을까? 아무리 힘들고 아픈 기억이라도 함께 하였던 그 순간 만큼은 다시 되돌아 올 수 없는 시간들이다. 그런데, 그 기억들이 그 추억들이 모두 사라져 버린 것이다. 그녀의 충동적인 결정 하나로.

  결국 조엘 역시 그녀를 기억에서 지워버리게 된다.


함께 했던 모든것을 제거 해 버리고 그 역시 그녀를 지우려 한다. 마치 그것이 그녀에 대한 복수인 마냥. 그것이 지금 이순간의 아픔을 피할 수 있는 마지막 방법인  것 처럼.



 


  같은 공간에 함께 쓰던, 그 ‘일기장’을 삭제해 나가는 것이다.

닥터의 말 하나하나가 조엘의 귓 속에 울린다.


“클레멘타인 양과 얽힌 삶을 정리하는 거에요. 기억을 추리는 게 완료되면 밤중에 기술자들이 방문해서 삭제합니다. 그렇게 아침에 일어나면 아무 일도 없는 양 침대에 누운 자신을 발견하게 되죠. 새 출발을 하시는 겁니다.”

혁명적인 과학기술에 의해.. 그렇게


한 남녀가 함께 했던 소중한 추억들은 종이쪼가리 마냥 지워져 간다.


뒤죽박죽 엉킨 기억이 지워져 가며, 조엘은 그녀와의 마지막 만남을 기억해 낸다.

만취되어 늦게 들어온 클레멘타인. 그런 그녀를 기다렸던 조엘은 그녀에게 이것 저것 잔소릴 한다. 결국 클레멘타인에게 상처주는 말을 내뱉고 말았고, 그녀는 이내 집을 나선다.



엉킨 영화의 줄거리가 흩어진 퍼즐이 맞춰지듯 이어져 간다. 영화 초반 부분에 나왔던, 망가진 조엘의 자동차. 이웃집 녀석이 긁어 놓은 줄만 알았던, 차가 사실은 클레멘타인이 그랬던 것이다.


기억은 점점 붕괴되어만 가고 조엘은 그녀에게 애원한다. 자신은 행복하다고, 지금 당신이 떠나면, 곧 모두 지워지게 될 거라고..






결국 그렇게 그녀와 함께 하였던 기억들이 마치 처음부터 없었던 듯이 지워져 간다. 다시 돌릴 수 없게…



 



 


정녕 축복받은 자는 망각하는 자일까?? 거기서도 얻는게 있기 때문이다…?

 그것이 내가 원하던 ‘얻음’이 아니라면?

 

 

아픈 기억을 잊는다고 행복해지는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성숙함’ 이란 처음부터 반석위에 세워지는 것이 아니라 생각한다. 그저 모래알 이었던 것이 모이고 그것이 깎이고 뭉치고 뭉쳐.. 그제서야 든든한 반석이 되어 ‘성숙해졌다.’ 라고 할 수 있는게 아닐까?

상처는 흉터로 남지만, 그 흉터로 인해 우리가 견뎌온 시간에 힘을 얻고 한발짝 더 앞으로 나 설 수 있는 것이다.



 



 





 

 

“처녀의 제비뽑기와 잊혀진 세상에 의해 잊혀져가는 세상과 흠없는 마음에 비추는 영원의 빛과 체념된 소망들은 얼마나 행복한가”

 

 

이 내용이 무엇일까 궁금하여, 한번 지식in에 찾아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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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ver ID : ohjima님의 답변

 

무구한 마음의 영원한 태양빛은,,

즉,, 행복은

특정사람이 가져야할 몫이 아니다.

소망을 이룬 사람이나,, 이루지 못해 체념하고 있는 사람에게 모두 존재한다….

단지 우리는 세상에 잊혀짐으로 인해,,, 세상은 잊혀진다….

우리는,,, 행복한것을 잊고있을 뿐이다… ,,,,

행복이라는것을 어디서 찾아야하는지 알려주는 내용이 아닌가… 싶네요. 이 영화에서 보듯이

사랑을 하다가,, 다투고 상처를 받는 것 때문에 서로 지우려 했던

영화속 연인들 이지만,, 그들에게 진정 잊혀진것은

서로에 대한 추억이 아니라

서로 사랑했던 순간이 행복한 순간이라는 것을 잊고 있었던,,,

 

 

 

그러니까,,

 

당신도.. 지금 행복한 사람인걸 잊고있을수 있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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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엘은 그녀에게 고백한다.

 

다시 한번 시작한다면……………………

 

다시 시작한다면…





 

그녀는 그에게

“날 기억해줘”

라는 말을 남기고 떠난다..

나와의 기억들을 잊지 말아주길 바라며.


정녕 사랑했던 당신과 나를

“기억해줘”

 

 

 


 


조엘의 기억은 마지막에 다다랐고 그녀와 함께한 모든 것들이 이제 끝을 맞게 된다.

 

“이별 인사 정돈 해야지~”

 

라는 클레멘타인의 말과 함께

 

둘은 키스로.. 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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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영화는 처음으로 돌아온다.

 

두근두근 반전 대탐험으로 알았던 영화

 

‘이터널 선샤인’은 그렇게 돌아온다.

 

 

 

 




클레멘타인은 조엘에게 말한다.

 

“나랑 있다면 넌 그때와 마찬가지로 불평하고 불만스러워 할 뿐이야”

 

 

마치 ‘우리가 다시 만난다는건 불가능해’ 라는 듯하다.

 

 

 

 

조엘은 간단히 대답한다.

 

 

“OK”

 

 

 

 

 

저 한마디에

 

‘물론 난 또 불평하고 불만스러워 할거야. 하지만 그래도 괜찮아.’

 

 

 

 

조엘과 클레멘타인은 마치 아무 일이 없었던 듯 웃는다.


 


우린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있으면서도 늘 함께했던 익숙함으로 서로에게 상처를 주게 된다. 그 대상이 가족이 될 수도 있고 가까운 친구, 혹은 연인이 될 수 있다.


  우리는 분명 망각의 동물이다. 그것이 축복이 될 수도 있지만, 그 망각 때문에 우린 소중한 것 마져 잊어 버리게된다. 전에는 정말 아끼던 것이었고, 진정 소중히 여겼는데도 익숙함과 나태함으로 서서히 “원래 있었는데? 뭐~” 라며 잊어버리는 것이다. 결국엔 그 소중함에 상처를 내고, 이내 떨쳐 버려 마침내 절망하게된다. 이런 노래 가사도 있지않은가? “있을 때 잘해~♬ 그러니까 잘해~♪”


  처음에 난 이 영화를 보기전, 기억에 대해 추억에 대해 생각하면서 영화를 보게됐었다. 기억의 잊혀짐, 추억의 단절로 우리의 사랑이 사라지는 줄로만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 영화의 진정한 내용은 그것을 뛰어 넘는 진한 사랑에 있다. 사랑은 기억과 추억에 좌절되지 않는다.

  어버이날, 부모님께 해드린게 아무것도 없었다. 마땅히, 선물을 한다고 해도 무엇을 해야될지 몰랐고 또한, 멀리 있다 보니 막상 그날 찾아가서 무엇을 할 수도 없었다. 못내 그게 가슴이 아팠다.


  어버이날이 지나고 주말에 집에 내려가 교회를 갔었다. 교회에서는 어버이 주일이라는 예배를 드리는데 설교시간중 목사님 말씀을 들으며, 60~70의 연세가 되시는 할머니 할아버지들께서 눈물을 흘리시는 것이다. 어버이라는 말에.


  보통 20~30 대 사람들이 60~70대 어른들을 생각하면, 그 어버이에 대해 생각하지 못할 것이라고 보지않나? 나는 놀랐다. 저분들도 그렇게 사랑받고 또, 사랑했었구나. 그 사랑이 오랜 시간이 지나고 닳아도. 그 빛은 그대로구나..

  영화에서 조엘과 클레멘타인은 자신들의 기억과 추억을 잃었다.


하지만, 그들은 이내 곧 깨닫는다. 더 소중한 무언가를 되찾았다는 걸. 바로,


이터널 선샤인


(:Eternal Sunshine Of The Spotless Mind)


“순결한 마음의 변하지 않는 햇빛”

사랑을 말이다

우리는 어쩌면, 또 망각하게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네 가슴은 새겨두고 있다.


그 두근 거림을 그 간절함을 그 소중함을……*

변하지 않는 햇빛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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