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 잃은 10대…가정·학교서 일탈 가시밭길로

<탈학교 청소년 5만시대①>
꿈 잃은 10대…가정·학교서 일탈 가시밭길로

【서울=뉴시스】
18살 준이(가명·여)는 1년6개여월 동안 수도권 일대의 쉼터를 전전하고 있는 소위 ‘탈학교 청소년’ 가운데 한명이다. 교사와 진로 문제로 갈등을 빚다 지난해 학교를 자퇴한 준이는 곧바로 어머니와도 사이가 틀어져 집을 나왔다.

집을 나와 마땅히 갈 데가 없었던 준이는 서울의 한 시민단체가 운영하는 단기쉼터에서 잠시 있다가 최근 인천 쪽의 장기쉼터로 거처를 옮겼다. 어머니와 별거중인 아버지는 대구에 살지만 자신이 쉼터에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한다고 준이는 털어놓았다.

준이는 쿠엔틴 타란티노처럼 영화감독과 제작자를 겸하는 것이 꿈이다. 올해 검정고시에 합격해 나름대로 새 출발의 계기를 마련했지만 자신과 함께 쉼터 생활을 했던 동생들 걱정이 크다.

“예전에 같은 쉼터에 15살 짜리 여자애가 있었어요. 중학교를 그만 둔 아인데, 그 나이에 이미 성병이 걸려있어요. 한번은 이 애가 대학생들과 원조교제를 해서 5만원을 벌었다고 자랑하는 거예요. ‘언니 저 잘못하는 거죠’, 하면서도 금방 웃으며 옷을 사러간다고 해요. 그런 걸 보면 머리가 터질 것 같지만 어쩔 수 없어요. 이게 현실인 걸요….”

◇한해 학업포기 중고생 5만명 육박
교육과학기술부의 ‘2006년도 학업중단자 현황’에 따르면 중학교는 1만8968명, 고등학생은 2만7930명이 학교를 그만 둔 것으로 나타났다. 이 해에만 중·고등학교에서 4만6898명이 학업을 포기한 것이다.

이는 전체 중고생의 약 1.22% 수준이다. 그러나 재입학률은 10%내외에 머물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탈학교 청소년 문제는 1997년 외환위기 때 불거졌다가 입시경쟁이 극심해진 2000년대부터 문제의 심각성이 본격적으로 대두됐다.

교육 관계자들은 입시경쟁 등이 치열한 서울 수도권에서 이런 현상이 가속화되고 있다고 본다. 지난해 서울 지역에서만 1만 명의 10대들이 공교육을 포기한 것으로 추산된다.

그러나 정부는 전체적인 총량만 파악하고 있을 뿐, 탈학교 청소년의 구체적인 현황과 변동추이를 내놓지 못하고 있다.

교육과학기술부는 공교육을 벗어났다는 이유로, 보건복지가족부는 예산미비 등을 이유로 탈학교 청소년에 대한 깊이 있는 연구나 대책마련을 주저하고 있다.

◇학교 아이들 어디서 무엇을 하나
탈학교 청소년에 대한 실태조사는 민간이 운영하는 대안교육 기관이나 몇몇 뜻있는 시민단체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다. 예산과 인력부족으로 인해 실태조사의 절대적인 신뢰성은 부족하지만 현재로서는 탈학교 청소년들의 삶을 엿볼 수 있는 유일한 통로이다.

서울시 대안교육센터에 따르면 탈학교 청소년 중 대부분은 속칭 ‘히키코모리(사회성 부족으로 온종일 방안에 틀어박혀 나오지 않는 사람)’가 되거나 피시방에서 하루를 때운다. 이른바 ‘은둔형 외톨이’는 탈학교 청소년들에게서 흔히 볼 수 있는 현상이다.

가정에서도 환영받지 못한 아이들은 길거리로 나선다. 그러나 가진 돈도, 직업을 얻을 능력도 없는 청소년들에게 사회생활은 ‘가시밭길’이다.

청소년들은 그 또래가 할 수 있는 손쉬운 직업을 택한다. 유흥가에서 취객들을 유흥업소로 이끄는 소위 ‘삐기’들의 상당수는 10대 탈학교 청소년들이다.

전문가들은 청소년들의 집단생활을 가장 경계한다. 서울의 신림, 청량리 일대의 속칭 쪽방촌에서는 비슷한 처지의 10대 남녀 8~9명이 혼숙하는 모습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원하지 않는 임신과 폭행 등이 이곳에서 벌어진다.

그러나 가장 우려되는 것은 인터넷의 발달로 인해 급속히 늘어난 성매매이다.
보건복지가족부 청소년보호중앙점검단이 올 4월부터 6월까지 인터넷 모 사이트 채팅방을 집중적으로 조사해 7월10일 공개한 ‘가출·위기청소년들 실태점검’을 살펴보면 사리판단이 미숙한 청소년들이 성매매 피해자로 전락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성매수자들은 대부분 평균 이상의 여유로운 생활을 하는 직장인들로서 오갈 데 없는 탈학교 청소년들의 처지를 이용, 자신의 욕심을 채웠다.

여성인원중앙지원센터 허나윤 정책팀장은 “우리나라의 온라인 환경을 보면 탈학교 청소년들이 근본적으로 성매매에 빠져들 수 밖에 없는 상황”이라며 “이들에 대한 인권보호대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정부, 사회안전망 구축 관심은 있나?
한국청소년상담원 통계에 따르면 탈학교 청소년들이 학교를 그만둔 가장 큰 이유는 ‘학교·학습 부적응’이다. 그 원인은 학교와 배움에 흥미를 잃었기 때문이다. 이들은 ‘경쟁적·획일적·폭력적 학습문화’와 ‘전일제·학기제·주입암기식 학습방식’에 거부감을 나타내고 있다.

서대문청소년수련관이 운영하는 ‘도시속 작은 학교’의 황인국 관장은 현장 경험을 토대로 “2000년초반만해도 탈학교 청소년 발생의 주원인은 가정해체였지만 최근에는 입시경쟁에서 탈락한 아이들이 많다”고 말했다.

그는 “경제적으로 보면 과거가 극빈층의 아이들이 탈학교화 되지만 최근에는 차상위, 중산층으로 확대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정부는 탈학교 청소년이 점차 사회문제화되자 2004년 ‘학교 부적응 및 학업중단 대책’을 발표해 대응책을 마련했다.

대책에 따르면 정부는 단위학교에 전문상담 인력을 배치하고, 학교-대안교육기관-청소년상담실로 연계되는 ‘학업중단자 지원 네트워크’를 강화하기로 했다.

또 대안학교를 각종학교 형태로 법제화해 학력인정을 추진하고 이를 위해 초·중등 교육법을 개정하고 대안학교 설립·운영에 관한 규정(대통령령)을 제정하기로 했다.

그러나 이같은 내용은 4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그 어느것 하나 구체화되지 못했다. 대안학교의 법제화나 전문상담 인력의 충원은 관련 예산이 제대로 확보되지 않아 요원한 실정이다.

복지부의 ‘위기청소년안전망’ 사업의 올해 예산은 55억에 불과하다. 위기청소년 1인당 11만원 꼴이다.

서울시 대안교육센터 강원재 부센터장은 “공교육안에서 그 동기를 못찾았을 때 강요나 질책이 아니라 내재된 동기를 찾아주는 것. 삶의 멘토로서 동기와 잠재력을 이끌어내는 것이 중요하다”며 당국의 적극적인 대책마련을 요구했다.

2008.09.28 11:13 newsis.com

Leave a Rep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