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은 언제 예술이 되는가] – 김형수

<삶은 언제 예술이 되는가> 제목이 참 맘에 드는 책이다. 이과생인 나에게 문학(文學)이라는 단어는 낯설고 어색하다. 김형수 작가는 그런 문학이라는 존재를 삶에 스며든 일상의 언어들이 만들어낸 창조물이라고 알려주는 것만 같다. 일반 역사 조차 관심이 없는 내가 문학·예술사에 대한 관심이 있을리 만무하다. 마냥 어렵게만 느껴지던 문학 장르와 예술사를 다양한 예시들로 쉽게 풀어주어 문학이 어떻게 변화하였고 현재는 어떤 문학들이 우리 주변에 있는지 알 수 있었다.

 

책 속에서

“인간은 흔들리면서, 뼈아프게 후회하면서, 자기 성찰의 낯 뜨거운 시간들을 견디면서 조금씩 완성되어 간다”

피할 수도 극복할 수도 없는 것을 감당하는 유일한 길은 그것을 삶으로 송두리째 안고 가는 것입니다. – 40p

인간의 삶속에서는 어떠한 유형의 운명에 대한 공식도 그것이 공식이 되는 순간 운명에 대한 이해를 가로막는 장애물이 되어버리고 맙니다. – 62p

시골내기의 서울 취업이라는 게 이래요. 회사란 절대적인 장소라 출근할 때 가던 길로 퇴근할 때도 고스란히 돌아오게 되어 있어요. 언제나 어스름한 거리를 걸어서 전철에 오르고 또 고만고만한 시각에 맞춰 돌아오다 보면 처음에는 설레지만 어느 순간부터 지겨워지게 됩니다. 어떤 날은 열심히 하자 맘먹을 때도 있고, 퇴근하거든 빨리 집에 가서 드라마나 한편 보다가 퍼져야지 하는 생각을 하기도 해요. 그런 단조로운 생활이 반복되다 보면 객관 세계(환경)가 저의 마음을 조금치도 건드리지 못하고 지나가는 날이 많아집니다. 개인 감정이 객관 세계에 너무 익숙해지는 거죠. 날씨가 추우면 옷이 조금 두꺼워지고, 날씨가 풀리면 조금씩 얇아지는 차이만 있을 뿐, 다른 변화를 느낄 수가 없어요. 아마도 퇴근길에 달이 떴던 날이 없지 않았을 텐데 보이지 않고, 별이 떠 있던 사실도 기억할 수 없습니다. 심하게는 매일 같이 은행나무 밑을 지나가면서 그 잎이 파랬는지 노랬는지 감지하지 못하게 돼요. 어느 가을날에는 뭔가 허전한 느낌을 갖지만 그게 청소부 아저씨가 은행나무 잎을 다 털어버린 탓에 생겨난 기분이라는 것도 몰라요. 객관 세계에 의하여 주관적인 감정이 환기되지 않는, 즉 서정이 발생되지 않는 상태, 상투적인 말로 권태가 반복되지요. 맞아요. 권태가 서정의 반대말이에요.
이제 그렇지 않은 경우를 이야기해볼게요. 겨울 어느 날이었어요. 날씨도 추운데, 조금 더 자고 싶은 것을 참고 일어나 출근 채비를 서둘렀어요. 세든 방이 반지하라 바깥이 잘 보이지 않아요. 이렇게 되면 날씨와 복장을 못 맞추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그래, 대충 준비하고 문을 열었는데, 온 세상이 발칵 뒤집혀 있습니다. 뜻밖에도 눈이 펑펑 내려서, 바람을 타고 눈발이 들이쳐 얼굴과 몸통을 마구 때려요. 저는 마치 고구려 장수가 화살 속을 뚫고 적진을 향하듯이 목을 잔뜩 움츠리고 걷습니다. 그때 어지럽고 캄캄한 눈발 사이로 고향집 울타리가 보이고 그 곁에서 손을 흔들던 어머니의 모습이 보입니다. 고향을 떠나올 때 순이도 그 뒤에 서 있었는데…. 갑자기 참을 수 없는 그리움이 솟구칩니다. 눈이 펑펑 내려서 천지는 하얗고, 마음은 한없이 심란해져서 숱한 그리움이 들끓어 감정이 요동을 칩니다. 객관 세계에 주관적인 감정이 크게 뒤집힌 겁니다. – 134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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