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쪽으로 가야되나

무언가를 시도한다는 것은 많은 것들을 수반하게 된다. 내 의도와 반대되는 사람과 부딪혀야 하며, 구성원 전체가 요구하는 것을 받아들여야 하며, 스스로의 내면적 갈등에 대응해야 한다.

어떤 일이든 낙관적인 시선을 갖는 것은 좋으나, 그것으로 인해 대책없이 행동하는 것은 치명적인 결과를 낳게 된다. 오히려 비관적인 시선을 갖고 행동하는 것이 처음에 의도하였던 목표를 이룩하는데 더욱 효과적일지 모른다.

그래서 행동할 때에 ‘비관적으로 계획’하로 ‘낙관적으로 진행’하는 것을 기본 방침으로 삼으려 한다. 하지만, 늘 그렇듯이 모든 것은 생각대로 흘러가진 않는다. 사람이 인지할 수 없는 범위에서 항상 사건은 터지기 마련이다.

‘예상된’ 사건에 대해선 의연하다. 하지만, ‘돌발적’ 사건에 대해선 누구나 조급해 지고 초조해 지기 마련이다. 이러한 것에 대처하는 것은 ‘숙련될’ 수 밖에 없다. 한 번 두 번 겪어봐야 비로소 그 상황을 냉정하게 판단하는 것이 가능해진다.

사람은 누구나 선택지를 갖고 살아간다. 어떠한 장소, 상황, 시간 속에서도 이 선택은 늘 존재한다. 사람은 선택을 강요당한다. ‘선택을 안한다’ 자체도 하나의 선택이므로 선택 없이 살아갈 수는 없다.
그렇다면, 어떻게 효과적으로 선택할 것인가.
먼저, 분명한 목표를 가지고 있어야 할 것이다. 목표의식이 없다면 쉽게 좌초되고 외부 상황에 영향을 많이 받게 된다.

그럼, ‘분명한 목표’는 어떻게 잡을 것인가. 이것은 순식간에 결정될 문제가 아니다. 날 때 부터 목표를 정한다. 라는 것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존재 할 때 부터 어떠한 사명을 갖는다. 라는 것은 납득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모든 존재가 이유를 갖는다. 라고 나는 믿는다. 여기서 믿는다는 말은 결과론적이지 않다. 즉, 철수는 영희를 믿는다. 라고 했을 때 내가 의미한 ‘믿는다.’는 영희가 철수에게 사기를 쳐서 그 믿음이 깨진다.의 ‘믿는다.’ 가 아니다. 즉, 영희가 어떤 행동을 하여 내 생각과 반대되는 결과를 낳는다고 해도 내가 말한 ‘믿는다’는 지켜진 다는 얘기이다.

다시 말하자면, 나는 모든 존재가 이유를 갖는다. 고 믿는다.

그렇다면, 나에겐 주어진 ‘사명’과 ‘목표’가 있는데 ‘사명’은 존재로 결정된다고 하고 ‘목표’는 어떻게 할 것인가.

어린 나이.. 보통 초등학생이나 중학생 정도 되는 나이에 특정 목표를 정한다는 것은 매우 힘들다. 그들이 갖고 있는 생각의 깊이가 낮다기 보단, 생각의 영역.. 폭이 좁다는 것이 맞을 것이다.

청소년기엔 ‘학교’라는 환경적 요소가 매우 크다. 그 외의 다른 문화적 요소는 접하기가 힘들다. 우리나라에선 그런 ‘다른 문화적 요소’를 찾는 아이들은 날라리라고 생각하기 쉬우니 대부분의 학생들은 일반적인 ‘학교’라는 요소를 강요당한다.

때문에 더욱 ‘학교’라는 장소가 중요하다.

청소년기의 아이들을 보고 “넌 꿈이 뭐니?” 라고 하는 것은 매우 진땀나게 하는 질문이다.
그리고 청소년들은 고민하게 된다. “난 꿈이 뭐지?” 때론, 자괴감에 빠지기도 한다. 꿈이 없는 나는 존재할 이유가 없는건가 하고.

하지만, 생각해보자. 당신은 청소년이 어떤 꿈을 갖길 원하는가 ? 
꿈은 보통 장래의 직업과 많은 관계를 갖게 된다. 꿈이 뭐니? 라는 질문은 장래 희망이 뭐니? 라는 질문과 거의 일맥상통한다. 원래 그 의미가 서로 다른 것인데 간단한 질문과 간단한 대답을 얻기 위해 서로 암암리에 그렇게들 생각한다.

그렇다면, 청소년들이 이 세상의 직업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을까 ?

요즘에야 인터넷이 일반화 된지 오래라 청소년들이 접하는 문화가 다양하다. 그나마 좋아진 상황이라고 볼 수 있겠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정보들이 청소년들에게 접해지지 않게 되는 경우가 많다.

안좋은 정보들은 너무도 빨리 퍼지는데 반해 진짜 정보들은 묻히기 쉽다. 이러한 가운데 청소년들은 무엇을 접하여 꿈을 가져야 할까 ?

단순하게 8살 짜리 꼬마보고 “꿈이 뭐니?” 라고 물으면 “경찰차요.” 라고 대답한다고 해서 그 아이가 바보는 아니다. 그 아이는 그것에 대해 어떤 매력을 느낀 것이다. 하지만, 소위 어른이라는 사람은 아이들의 입장과 생각 따위 안중에도 없고 자신이 옳다고 느끼고 경험한것만을 아이들에게 가르친다.

사람마다 저마다 생각하는 것이 다르고 그에 따른 경험이 다른데 어찌 자신의 생각만을 주입하려 할까 ?

이런 가운데 ‘비젼’, ‘목표’, ‘꿈’ 등을 생각한다는 것은 매우 힘들다. 짜여진 틀에 자신을 끼워 맞추는 것이 오히려 세상 사는데 참 편할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하지만, 편한 삶이 곧 진정한 삶이라고는 할 수 없다. 당장 편하고 이득이 되어 보이는 삶도 돌아서면 후회가 될 수 있다.

“그의 삶은 흘러갔네, 그는 삶을 살지 않았다네”

삶을 산다는 의미는 흘러가게 놔두는 것과 의미가 크게 다르다. 이에 따라 목표를 설정한다는 것은 의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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