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토바이

국민학교 다닐적에 학교 수업을 마치면 공부방에 갔다. 당시 학원이라기엔 볼품없는 가정집에 아이들을 모아놓고 공부를 가르치시는 선생님이 계셨다. 그 선생님 특기는 기마자세 벌주기 였다. 말을 잘 듣지 않을 때 마다 기마자세를 시키셨다.
그날도 어김 없이 학원가는 날이었다. 도로를 건너 골목 안쪽으로 가면 공부방이다. 마침 도로를 건너려는 찰나 눈 앞이 번쩍하더니 이내 몸이 질질 끌려 어디로 가는 느낌이 들었다. 주변이 어수선 했다. 여기 저기 뭐라하는 소리가 들렸다. 그때 나는 내 모범 딱지가 잘 있냐고 고집스럽게 물었던거 같다.
모범 딱지는 학교 선생님이 아이들에게 바른 생활을 했을 때 나눠주던 스티커였다. 교실 벽에 붙은 포도송이에 그 스티커를 다 붙이면 선생님이 선물을 주셨다. 그때 그게 주머니에 있었던거 같은데……
누구 것인지 모를 차 뒷자석에 난 쓰러져 누웠고 엄마의 눈물 섞인. 걱정어린. 원망스러운 목소리가 들렸다. 그 와중에도 난 딱지타령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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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으로 이동해 정신 없는 상태로 의사 앞에 앉았다. 속이 메스꺼웠다. 쓰레기통이 눈 앞에 있다. 토한다. 붉은색 피가 섞인 토가 쓰레기통에 떨어진다.
이마가 심하게 긁혔다. 엑스레이를 찍었던가. 의사는 큰 병원에 가봐야한다고 했다.
검사 후 크게 이상이 없어 보였다. 난 병원에 입원했다. 6인실 정도 되었는데 할머니들이 많았다. 옆엔 어떤 형이 있었던거 같다. 아픈놈이 폴짝폴짝 뛰어 다닌다고 할머니들께 혼이났다. 그래도 손주뻘이라고 귀여워 해주셨던거 같다.
퇴원 후 날 오토바이로 치었던 아저씨가 오셨다. 평소 자주 짜장면을 시켜먹던 중국집 아저씨였다. 우리 부모님도 모르는 사이가 아니었다. 백주대낮에 아저씬 술을 먹고 배달을 갖다 오시는 중이었던거 같다. 그때 내가 길을 건너다 오토바이에 치어 30미터 가량을 끌려 가며 이마가 까였던 거다. 부모님은 너그럽게 그분을 용서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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