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초

작년(2010년) 벌초 때는 심하게 비가왔었다. 그때 낮에는 교회에 가야 했으므로 아침 일찍 일어나서 벌초를 하고 오자고 아버지가 얘기하셨었는데 전날 새벽까지 컴퓨터를 하다가 늦게 자버렸다. 결국 깨워도 제정신이 아닌 상태였기 때문에 아버지는 그냥 포기하고 혼자 산엘 가셨다.
여러 친척들이 모인 자리에 아마 자신의 자식들은 나오지 않아 못내 섭섭하셨을거다. 게다가 그날 따라 비가 어마어마하게 쏟아져서 벌초하러 갔던 어르신들 고생이 이만 저만이 아니었다. 궂은 비 속에서도 몇시간이고 벌초를 하시다가 사촌 동생 아버지는 쓰러지셨다는 얘기까지 들려왔다.


교회 마당 앞에서 예배를 땡땡이 친다고 나와있었는데 마침 사촌동생이 급하게 집 쪽으로 뛰어 가는게 보였다. 딱 보기에도 뭔가 일이 터졌다는 느낌이 들어 우산을 들고 냉큼 뛰어 쫓아갔다. 아니나다를까 아버지가 쓰러지셨다고 핸드폰으로 전화를 받았다는 것이다. 벌초를 하다가 쓰러지셨다는데 그분은 워낙 몸이 안좋으셨던 분이었다. 사촌 동생은 아버지가 쓰러지셨다는 전화에 눈물을 펑펑 쏟았고 급박한 상황에 사촌동생을 진정시킬 수 있는게 무엇일까 떠오르지도 않았다. 차를 끌고 벌초장에 갔었는데 벌초 하던 어르신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계속 벌초를 하고 계셨다. 사촌동생은 “아빠”를 외치며 산으로 올라갔고, 나는 그분을 찾아 이리 저리 헤맥고 있었는데 다행히 큰 일 없었다는 얘기를 작은할머니에게 들었다.
사촌 동생은 아침에 벌초를 도우라는 아빠의 말을 어겨서 이렇게 된거라고 자책했고, 나는 전날밤 새벽까지 놀던 걸 후회했다.


작년에 그렇게 고된 상황을 지켜보고 올해엔 아버지를 따라 산에 올라갔다. 늘 컴퓨터 앞에만 앉아 있어 저질 중에도 탑에 드는 저질 체력이지만 힘 닿는데 까지 도우려고 했다.
벌초 작업에 익숙한 어른들은 제초기를 들고 풀을 깍았고 나머지 사람들은 잘린 풀들을 그러모아 버렸다. 한 20분 움직였을까. 내 몸둥이는 아우성을 쳤다. 이내 못 견뎌 그늘에 앉아 쉬다가 어른들이 일하시는 걸 보고 다시 일어나 풀을 모았다. 이 짓을 얼마나 반복 햇을까.. 이젠 산을 올라가는 것만으로도 몸이 지쳐버렸다. 다음 장소로 이동하는데 나는 다른 어른들 보다 더 높은 쪽 묘지로 이동했다. 우리 친척중에 가까운 친척분들이 그곳을 깍고 있을 거라고 생각해서였는데 막상 가보니 아무도 안 계셨다.
힘들게 올라왔는데 사람은 없고.. 지친 나는 벌렁 누워 하늘을 쳐다봤다. 5분 정도 쉬었을까? 곧 아래에서 작업하시던 어른들께서 올라오셨고 다시 일어나 일을 반복했다. 아… 외국에 잔디 깍는 기계는 이런데 못 쓰나. 아니면 진공 청소기 같은게 있으면 저 깍인 풀들을 죄다 빨아들여 버릴텐데..
헛된 망상 속에서도 손은 계속 왔다 갔다를 반복 했고 끝나지 않을 것 같은 벌초 작업이 끝났다. 이걸 작년엔 비 맞고 했었다니..
내년엔 운동 좀 해서 더 잘 도와드려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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