압력밥솥

9살 이었던가. 엄마 아빠는 주로 밭에 나가 있는 시간이 많았다. 그날은 너무 배가 고팠다. 저녁을 먹어야 했는데 부모님은 아직 돌아 오시지 않았다.
먹을 게 없나 부엌을 보았는데 문득 밥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밥 짓는 거라고는 엄마가 압력밥솥에 쌀을 넣고 끓이는 모습 밖에 본적이 없었다. 압력 밥솥에 쌀을 넣고 가스렌지 위에 올려 놓은 후 한참을 기다리면 압력밥솥 뚜껑의 꼬다리가 췩-췩-췩-췩 소리를 내며 하얀 연기를 내뿜었다. 그런 모습이 기억에 남아 나는 쌀을 압력밥솥에 넣고 가스렌지에 불을 켰다. 얼마가 지났을까? 이내 익숙한 소리를 내며 하얀 연기가 밥솥에서 뿜어져 나왔다.
이제 불을 끄고 저 밥솥 꼬다리를 탁- 치면 취익———– 하고 안에서 어마어마한 연기가 뿜어져 나온다.
그럼 밥이 다 된거겠지?

밥솥을 들고 방으로 왔다. 바닥에 밥솥을 내려놓고 뚜껑을 열었는데 밥은 질게 되어 있었다. 게다가 바닥엔 아무것도 깔아 놓질 않아서 방바닥의 장판이 검게 타버렸다.

그날 이후로 우리집 방 중앙엔 검게 탄 둥그런 원이 생겨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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