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수업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

데이비드 케슬러

 

인생 수업이란 책은 두 호스피스의 인터뷰 이야기 이다.

단순 인터뷰 형식은 아니고 그녀들이 겪고 느껴온 바를 책 속에 닮고 있다.

사람은 늘 ‘죽음’ 을 두려워 한다.

태어나면 죽는다는 진리를 알고 있으면서도 두려워 하는 이유는 뭘까?

애착? 미련? 아쉬움?

죽음을 직면한 사람들은 무슨 생각을 할까?

영화로웠던 옛 기억? 아니면, 슬펐던 과거?

그녀들은 빡빡한 삶을 살지 말라고 알려준다.

요즘 현대인은 꼭 ‘무엇을 해야만 해!’,  ‘움직여야돼! 시간이 아까워’, ‘한시라도 바삐 움직여야해!’

스스로를 다그치며 살아간다.

무엇에 그리 바쁜듯 살아가는 것일까?

그들이 바삐 살아온 시간은 무엇을 남기는 것일까?

인생수업에 나온 많은 사람들은 죽음을 앞두고 깨닫는다.

 

자신이 진정 원했던 것이 그곳에 없었음을.

“비극은 인생이 짧다는 것이 아니라 단지 정말 중요한 것이 무엇인가를 너무 늦게서야 깨닫는다는 것이다.”

-인생수업중.

 

“가장 큰 상실은 우리가 살아 있는 동안 우리 안에서 어떤 것이 죽어버리는 것이다.”

-인생수업중.

 

삶은 누구에게나 동일하게 주어지지 않는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여, 불공평한 것 뿐만은 아니다.

우리는 주변에 정말 좋은 사람인데 짧은 인생을 산 것을 보았을 것이다.

그 사람은 정말 허무하게 죽어간 것일까???

‘젊은 나이인데…’, ‘아직 어린데….’ 라며 ?

모든 것에 의미를 두어야 할 것인가?

세상에 헛된 것은 없다고 생각된다.

인생수업에서 엘리자베스와 데이비드는 우리에게 삶은 배움이라고 알려준다.

우리는 배움을 얻으려 살고 또한 죽음은 배움의 마침표. 라는것이다.

사고로 인해 정말 아끼던 사람이 고인이 될 수 밖에 없었던 상황에서.

누구를 탓할 것인가.

사고를 일으킨 장본인? 부조리한 세상? 부조리한 환경?

알고 있을 것이다. 어쩔 수 없이 일어났던 일인것을.

자신 스스로 그 상황을 바꿀 수 없다는 것을.

하지만, 그렇다고 하여 그 삶을 하찮게 여겨선 안된다.

분명, 그 또는 그녀는. 자신이 왔음으로 해서 세상에 무엇인가를 던졌을테니까.

그것이 자기 자식이든 부모든 친구이든 친지들이던.

무엇을 위해 사는가에 대해 늘 고민하게 된다.

돌려 생각해 보자.

죽음에 직면한 사람들 역시 무엇을 위해 사는 것인가 고민을 할까?

다음 달 ‘죽는다’ 라는 시한부가.

인생에 대해 고민하고 무엇을 위해 사는 것인가 고민할까?

물론! 당연히 고민한다.

단 1분 1초의 순간이라도!!

존재의 이유에 대해 고민한다.

 

수 많은 가식 속에서 사람들은 살아간다.

‘아 이 자리에선 이런 모습이어야 될꺼야’

‘내가 저사람에게 인정 받으려면 이럴 수 밖에 없어’

우리는 그렇게 교육 받아 왔을지 모르겠다.

 

어렸을때 기억이 나는가?

부모님은 우리에게 오늘 무엇을 했냐고 물어본다.

우리는 그러면 ‘이유’ 있는 행동을 했다고 얘기해야만 했다.

‘시간’ 을 ‘허비’ 하지 말아야 했기 때문에.

하지만, 의문이 든다.

어떤것이 허비라는 말인가?

사람이 100년 리미트르 삶을 살아가게 되는가?

아니다. 어떤 사람은 20살도 안되서 어떤 아이는 태어나자 마자. 어떤 아이는 태어나기도 전에 죽을 수 있다.

그 시간 속에 어떤 것이 진정 허비 일까?

‘공부 열심히 해라’

라는 말이 1개월 뒤에 죽어가는 사람에게 무슨 소용이 있을까?

진정 ‘시간’ 을 금과 같이 쓴 다는 것은 미래를 바라보며 쓰는 것이 아니다.

 

지금 이순간이 나에게 가장 중요한 순간이란 것이다.

우리는 과거에 얽매여 미래를 바라본다.

과거를 생각하며 ‘이땐 이게 좋았어. 아니야 이건 아니야~ 이걸 바꿔야지~’ 라며

‘나중엔 꼭 무언가 이루고 말거야’ 라며

왜 우리는 지금을 살지 못하는 것일까.

두려움 때문일까?

물러서거나 앞으로 나설 수 없기 때문에?

그래서 우리는 머뭇 거리고 있는 걸까?

내가 커가면서 느낀건. ‘두려움’이다.

내면 속 깊이 잠재된…

 

인생수업에서 두려움은 사랑으로 이겨낼 수 있다고 한다.

걱정 역시 두려움에서 나오고..

늘 안절부절 못하고

허둥대는 날 발견한다.

 

얼마전 이모가

“할머니가 널 위해서 늘 기도하셔 우승이는 작은일에도 놀라서 담대함을 달라고.”

어떻게 아신 걸까?

나도 날 잘 몰랐는데 할머니는 일찌감치 날 위해서 기도 하고 계셨다니…

삶에 급박함을 느낄 땐

오히려 한발 뒤로 물러섬이 도움이 될 수 있다.

나는 늘 조급해 하고

무슨 사건이 터지면 바로 해결을 봐야만 했던 그런 사람이다.

이런 나에게 나는 무얼 배우고 있는걸까?

나는 ‘나’라는 존재로 무엇을 바라보고 있는걸까?

분명 나 같은 사람은 다신 없다.

나 같은 시선으로 세상을 보는 사람도.

그 속에 무엇을 배우고 무얼 남기려 하는지..

아직은 아리송다리송 하다-

인생 수업이라..

다시 읽어야 겠구나.. 잘 읽었다고 생각했는데

너무 질질 끌어서 읽었던 것 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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