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아이유 팔레트 청주 콘서트 후기

2017년 아이유 전국 투어 콘서트, 청주에서 열리는 팔레트 콘서트를 보러 갔다. 태어나서 두 번째로 보게 되는 가수 콘서트다. 주변에 덕력이 넘쳐 보이는 척(?) 했지만, 막상 가수가 정말 좋아 찾아서 보고 일거수 일투족을 기록하진 않는다. 그것도 정말 대단한 노력과 정성이 필요한 작업이라. 나는 다소 가벼운 팬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이번 콘서트는 꼭 가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올 해는 23살을 지난 아이유의 터닝포인트 같은 느낌을 받았다고 해야할까. 그리고 나에게도 무언가 한 해의 추억거리를 만들어 주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내가 보았던 첫 번째 콘서트는 넬(Nell)의 공연이었다. 대학생 때 봤던거라 정확히 기억이 안 나는데 그렇게 넓진 않은 극장에서 공연을 관람했던 것 같다. 그때는 넬의 팬도 아니었는데 주변 친구들의 충동적인 권유에 ‘가자가자!’ 해서 가게 된 콘서트 였다. 멤버도 나를 포함한 남자 셋이었다. 그 당시 넬의 팬은 여성이 매우 많았다. 나도 모르게 가슴에 두손을 모으고 공연을 관람 했던 기억이 있다.

 

아이유의 팔레트 콘서트는 부산, 광주를 거쳐 홍콩으로 갔다가 청주, 서울을 마지막으로 끝을 맺는다. 반드시 보겠다는 생각에 우선 청주로 예매하고 나중에 서울도 예매했는데 청주는 1층 중간 자리인 반면에 서울은 3층 끝자락 자리 밖에 구하질 못 했다. 이왕 볼거라면 제대로 관람하고 오자는 생각으로 콘서트 다음 날을 휴가까지 쓰고 청주로 향했다. 무슨 자랑이라고 회사 사람들에게도 덕후력을 인정 받고 청주로 향했다.

청주로 가기 위해 동서울 터미널에서 간단히 아침을 먹고 고속버스를 탔다. 처음엔 버스 정류장을 잘 못 찾아서 헤매이다가 다행히 직원 분의 도움으로 제 때 버스에 오를 수 있었다. 고속버스를 오랜만에 이용해서 그런지 QR코드로 표를 인식하는 것이 신기했다.

 

약 1시간 40여분 만에 청주에 도착했다. 평소 회사-집, 집-회사만 하다가 이렇게 낯선 곳에 오니 기분이 묘하다. ‘오늘 나 같은 아재들이 아주 넘쳐 나시겠군’ 이란 생각으로 청주 고속터미널에서 내렸는데 내리자마자 어떤 고딩처럼 보이는 여자애들이 ‘아이유, 아이유~’ 하는 걸 보고 가슴이 철렁했다. ‘설마. 그곳에 나만 아재는 아니겠지.’

우려스러운 마음을 애써 눌러 넣으며 석우문화체육관으로 향했다. 청주에서 딱히 둘러 볼 곳을 정하지 않았다. 우선 체육관만 간단히 보고 근처에서 기다렸다가 공연을 관람하기로 했다. 고속터미널에서 버스를 타고 청주대학교에 도착했다. 청주대학교를 가로질러 석우체육관으로 갔다. 석우체육관에는 이미 사람들이 줄을 서서 무언가를 하고 있었다. 궁금해서 가보니 아이유 MD? 굿즈?를 팔고 있는 것이 보였다. 응원봉과 모자, 후드 티 등이 있는 듯 했다.

시간을 꽤 여유 있게 잡고 와서 마땅히 할 게 없었다. 근처 카페에서 책을 읽다 가기로 했다. 카페에 앉아 책을 읽는데 중간 중간 아이유 노래도 들리고 아이유에 대한 얘기도 언뜻 들리는 것 같았다. 공연장이랑 가깝다 보니 팬들이 여기저기 있는 느낌이다.

공연 전에 밥을 먹고 들어가야 할 것 같아 주변을 두리번 거렸다. 처음엔 두루치기 집엘 들어갔는데 혼밥하는 애는 안 받아 준데서 처량하게 그냥 나왔다. 어디 괜찮은데 없을까? 하다가 갈비탕 집에 들어갔다. 따듯한 국물이 땡겼는데 갈비탕이 맛도 좋아서 기분이 한층 업된 아재가 되었다.

저녁을 든든히 먹고 공연장으로 들어갔다. 우려했던데로 아재들 보다는 어린 아이들이 참 많이 보였다. 그리고 정말 의외였던 것은 여성 팬들이 진짜 많았다. 솔직히 성비가 8(남):2(여) 정도는 될줄 알았는데 거의 5:5 이거나 여자가 오히려 많은 거 같았다.

자리에 앉아 공연이 시작되길 기다렸다. ‘혼자 온 사람들이 많을거야!’ 라며 ‘하나도 안 뻘쭘한데?’ 라고 생각하려 했지만, 내 옆좌석을 채워주지 않는 사람에게 이유 모를 원망이 들었다.

6시가 되어 갑자기 실내 조명이 꺼지며 일제히 응원봉이 똑같은 색으로 변했다. 그리고 갑작스레 공연이 시작 됐다.

 

그동안 아이유의 노래를 좋아했으면서도 막상 공연장에 가서 느꼈던 것은, ‘내가 아이유의 이미지만을 소비하던 팬이었구나.’ 였다. 가기 전에는 ‘와~ 얼마나 예쁠까~’, ‘얼마나 노래를 잘 할까.’ 이런 생각만 했는데 실제 공연장에서 느꼈던 것은 아이유의 노래가 한땀 한땀 정성스레 수를 놓는 듯 했다는 것이다. 그동안 가졌던 이미지는 그냥 노래 하는 귀여운 가수 아이유였는데 거기서 느꼈던 건 프로페셔널한 뮤지션이었다. 뭔가 미묘한 감정이 느껴졌다. 이 사람이 그동안 이룬 성취가 대단하다고 느껴지는 한편 무언가 완성시키지 못한 자신에 대한 회한이랄까. 혼자 가서 이런 뻘 생각이 더 깊어졌는진 모르겠지만, ‘와. 노래 잘한다! 와~ 예쁘다.’ 라는 것 보단. ‘와… 진짜 뮤지션이네.’ 라는 생각이 들며 일종의 존경심이 들었다. 한 분야에 대해 꾸준히 노력해서 이룬 모습이 대단하다고 느꼈다.

 

아이유의 열혈 팬은 아니므로 그 사람에 대한 모든 것을 알지 못하지만 내가 표면적으로 상상하며 느꼈던 생각만 이야기 한다면, 신인 시절 아이유는 절절한 느낌으로 본인을 위한 무대가 있었으면 좋겠다 라는 소망을 가진 아이였다. 20살을 넘어 23살에는 노래 가사에도 많이 표현되었듯이 갈팡질팡하고 어디로 튈지 모르는 사람이었다. 내적 모순을 가감없이 그대로 표현했던 것 같다. 팔레트에서의 아이유는 한결 편해졌다고 할까. 오프닝에서도 자기가 이제는 따듯함은 따듯함으로 받을 줄 아는 사람이 되었다. 라는 말을 한다. 나는 과연 그런가. 아직 나는 따듯함을 따듯함으로 받지 못하는 것 같다. 이런 생각의 미묘한 감정이었을까.

 

오랜만의 콘서트라 그런지 콘서트 퀄리티에 매우 놀랐다. 공연장 중간과 양 사이드에 놓여진 스크린이 매우 선명하게 잘 보였고 밴드와 댄서들 역시 무대를 가득 채울 정도로 프로페셔널 했다. 1층 나구역 29열에 자리에 앉았었는데 무대가 잘 보이진 않았다. 그럼에도 스크린이 워낙 잘 되어 있고 카메라 워킹도 좋아서 만족스러운 공연이었다.

초대가수로는 에픽하이가 나왔다. 아이유와 함께 한 곡 부르고 에픽하이만 따로 2곡? 정도를 불렀던 것 같은데 한껏 분위기를 달구고 바로 사라져 아쉬웠다.

무대는 팔레트라는 제목에 어울리게 색깔별로 구성되어졌다. 정열적인듯한 빨간색, 새싹 같은 노란색, 힐링 될 것 같은 녹색 등..

특별히 ‘밤’이라는 컨셉으로 이루어진 곡들은 들으며 많이 슬펐다. 아이유 곡 중 하나인 ‘밤편지’는 아이유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자기가 표현할 수 있는 최고의 말이 무얼까. 고민하며 쓴 곡이라 한다. 불면증이 있는 아이유에게 사랑한다는 말은 ‘잘 자’ 라는 말이라고. 자기는 잘 못 자더라도 너는 잘 잤으면 좋겠다. 라는 마음을 표현했다고 한다.

https://youtu.be/Nfx9l0rJaWw

(본공연의 마지막 곡인 ‘이름에게’, 영상은 MMA 시상식 때)

3시간 30분 정도가 지나자 본 공연이 끝났다. 다행히 서울로 올라가는 막차가 있어서 예매를 해두었는데 앵콜 공연이  계속 이어졌다. 마무리를 함께 하고 싶었지만 버스 시간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나가야 했다. 9시 40분 정도가 되자 아이유가 10대 청소년들은 막차가 끊기기 전에 빨리 들어가야 한다고 어서 가시라고 했는데. 청소년도 아닌 내가 자리에서 일어나 나올 수 밖에 없었다. 아이유가 ‘청소년~ 청소년’ 장난식으로 강조해서 얘기했는데, 막상 공연장 밖에서 자녀들을 기다리는 부모님들을 보니 맘이 찡했다. 추위 속에 기다리다가 “재밌었어?” 라고 물어 보는 것이 귓가에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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