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타리나 블룸의 잃어버린 명예] – 하인리히 뵐

카타리나 블룸의 잃어버린 명예는 1975년에 쓰인 언론 매체의 왜곡에 대한 비판 소설이다. 십수년 전에 쓰였음에도 그 내용을 현재에 대입하면 지금과 전혀 다를게 없는 상황에 치가 떨릴 정도로 분노하게 만든다.  카타리나라는 평범하고 근면 성실한 가정부가 어떻게 언론에 의해 난도질 당하는지 너무나 사실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그 행태가 지금에도 아주 익숙하다 못해 과거에 언론을 유지하던 기득권이 정말 1그램 조차 바뀌지 않은 것인가 라는 생각이 들정도이다.

기자의 사명 따위 잊어 버린지 오래인 지금의 기자들은 무슨 생각을 할까? ‘국민의 알 권리’ 라는 허울 좋은 명분으로 그들이 그동안 저지른 행태는 단순히 글자로 시작하여 글자로 끝난 것이 아니다. 지난 세월호 사태에서 기자들은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움직였나? 지난 정권의 부조리, 부패의 그늘에 있던 사람들이라는 것은 이해하지만 그들이 그렇게 ‘충성충성’ 하며 짓밟은 국민들을 앞세워 자기들을 비호하는 짓을 하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

세월호 유가족분들은 누구도 바꿀 수 없는 진실이 TV, 인터넷, 신문 기사로 왜곡되어 전달되는 것을 보고 어떤 생각을 했을까? ‘유가족분들께서 보상금을 얼마를 받게 된다.’, ‘수능에서 단원고 학생들이 무슨 혜택을 받는다.’ 이런 게 그분들께 무슨 혜택과 이득이 되겠는가? 마치 그것으로 엄청난 특혜를 받는 것 처럼 포장하고 나라에 과한 보상을 바라는 것 처럼 왜곡하는데 일조한 언론 매체의 모습을 과거 쓰였던 ‘카타리나 블룸의 잃어버린 명예’ 소설에서도 동일하게 느껴졌다.

어찌보면 역사가 반복 된다는 말은 역사를 반복하여 자기 이득을 취득하는 자들이 만든 말이 아닐까? 라는 생각도 든다.

사실이라는 현상 전파는 전달하는 주체에 따라 해석이 달라진다. 따라서 ‘기사’는 반드시 작성자의 의도가 함께한다. 실제 본인이 겪은 일이더라도 시간이 지나면 왜곡되고 자신이 해석하는 방향에 따라 다르게 이해되는데, 우리가 접하는 언론 매체는 얼마나 많은 의도가 실려 있고 얼마나 다양한 해석이 가능할까?

그렇기에 독자로서도 언론 매체를 맹신하는 것은 문제가 있을 수 있다. 앞서 언급하였듯 언론매체는 반드시 누군가의 의도가 실리게 된다. 따라서, 어떤 사건, 사실을 접할 때에 누락 된 것은 없는지 내가 해석한 것 외에 다른 사실은 없는지 주의해야 한다.

사실 카나리나 소설에서 왜곡된 차이퉁지에 이끌린 대중을 비판하는 내용은 없다. 왜곡의 주체가 된 ‘차이퉁’이 1차 가해자이다. 하지만, 거기에 사실 확인 없이 선동된 대중들은 카타리나에게 간접적이나마 새로운 위해를 가하는 존재가 된다.

때문에 독자의 눈 또한 한층 면밀해질 필요가 있다. 대부분의 대중은 자기 일에 집중하기에도 바쁘기 때문에 헤드라인만 소비하는 경우가 많다. 소비는 하되 그것이 진실일지 아닐지는 모른다는 견제는 꼭 필요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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